오늘은 첫 장을 넘기기가 무섭게
마지막 장으로 내달리게 되는,
굉장한 흡입력을 가진 소설을 소개해보려한다.
[아몬드]
손원평 님
창비
중학생이 된 녀석들은 참 재미있다.
앳띤 초등학생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중학생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면 갑자기 천하무적이 된다.
그 놈의 교복이 말썽인걸까.
멀쩡하던 아이들이 교복을 걸치는 순간 중2병이라는 면죄부를 등에 엎고 세상 시니컬해지는 것이다.
그런 녀석들에게 독서란 참으로 지루하고 꼰대같은 일이다. 세상에 얼마나 재밌는게 많은데 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종이 나부랭이나 뒤적이며 남다른 나의 인생을 논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몬드]는 달랐다.
표지와 제목만 봐서는 도저히 내용이 가늠이 안가고
그렇다고 대놓고 손사래 치기엔 녀석들에게 흥미가 돈다.
처음 [아몬드]를 만났을 때,
나는 왜 이런 표지를 사용한 걸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선 어쩜 이렇게 표지를 찰떡같이 만들었을까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 건조하면서 미지근한 소설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주는 윤재의 얼굴.
윤재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딱 이런 모습일 듯 하다.
[아몬드]는 알렉시티미아, 즉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는 특이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주인공 선윤재의 시점에서 내용이 전개된다.
어지간한 아이라면 도저히 극복하기 힘들 상황임에도 너무나 담담한 윤재의 언행은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하다못해 급기야 공포로 몰아넣는다.
조금이라도 튀지 않게 평범하게 보이게 보이기 위해
윤재를 교육시키는 엄마의 노력은 너무나 필사적이라
슬프지 않을 수 없고, 할머니의 '우리 예쁜 괴물'이라는
애칭 역시 슬픔이 묻어난다.
윤재의 장애에 이유가 없었던 것 처럼 똑같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윤재는 가족을 잃게 된다. 윤재는 왜 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지만 그 질문에 적절함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이가 없다. 그리고 그 질문이란 것 역시 사실 일반인들에게는 우선순위가 잘못된 질문이였다.
담담하게 별다를 것 없이 나날을 보내던 윤재에게
곤이와 도라라는 새로운 인연이 찾아온다.
사실 '담담'이라는 말도 윤재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윤재에게 하루는 그저 일상일뿐 애써 노력하며
담담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곤이와 도라 그리고 윤재는
서로의 트라이앵글이 되어 함께 소리를 내고
부딪히고 뒹굴며 각자의 아몬드를 찾아간다.
[아몬드]는
감정이 넘치는 세상에
감정이 없는 사람이 나타나
감정을 강요당하는 큰 줄기 속에서
감정이 없던 이도
감정을 속이던 이도
감정에만 충실하던 이도
모두 자신의 진정한 감정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읽고 느끼기엔 그랬다.
줄거리가 시니컬하고 자극적인 소재들이 많아 중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지루하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단순한 흥미위주의 소설이 아니기에 마지막 장을 덮고 난 아이들의 눈빛이 뭐랄까.
생각이 많아진 듯 보인달까.
나 역시 그랬기에 아이들의 그 표정이 고마울 뿐이다.
자기 계발서가 홍수처럼 난무하는 시대다.
나 역시 올해들어 자기계발서를 많이도 봤다.
그런데 그들의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가
가끔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 있던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부정당하고
너무나 다양한 방안들이 숨통을 조여왔다.
어느 것이 내게 맡는 방법인지 찾다가
그냥 이 생이 다 끝날 것만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작가님들의 내공과 삶에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너무나 힘든 때에는 이 놈의 우유부단함까지 더해져 나를 더 의기소침해지게 만들기도 한다.
소설은 그래서 더 값진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잘 써진 자기 계발서에도 '작품'이라는 말은
붙이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은 '작품'이다.
읽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르고 받아들이는 가치가
다르다. 어느 하나 같은 사람은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나의 상황에 맞게 읽고 느끼고 감당한다.
그 누구도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어렵고 다가가기 힘들지만 깨달음의 가치는 값으로 따지기 힘들다.
정말 오롯이 나를 돌아보고
나의 감정에 대해 헤아려볼 시간이 필요하다면
[아몬드]를 추천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재미있다.
사실 이게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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